세종로 사거리 감리교 본부 앞쪽 버스 정류장에 이순신상을 2시방향에 놓고 군밤과 쥐포를 구워 파는 노점이 있다. 추운데 머리를 꽁꽁 싸매고 묵묵히 군밤을 구우시는 할머니. 회사가 이 근처일때 밤낮 지나면서도 사먹는 사람 하나 본 일이 없다. 손에 현금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기도 하지만 현금이 있을때도 잘 차려입고 바쁘게 다니는광화문 직장인이 저런 노점에서 군밤 사고 있는 모습이 구려 보일까봐 한 번도 사먹은 일이 없었다. 그러다 어느날 문득 너무 추운날임에도 항상 저 자리에 나와서 군밤 굽는 할머니를 보다 스타벅스에서 오천원 쉽게 꺼내 커피먹는 나를 비춰 보고는 마침 손에 현금이 있길래 삼천원을 주고 군밤 한 봉지를 사 먹었다. 설익어 짜각짜각한 밤도 있었고 껍질도 좀 덜 까진 부분도 있었지만 맛있었다.


직장을 옮기며 광화문 근처로 잘 가지 못했는데 광화문에는 우리 집으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 오늘은 야근도 안해 시간도 있고 마침 날도 풀려 걸을만 하겠다 싶어 광화문까지 걸어 간다. 오늘은 월급이 들어오는 날인줄 모르고 걸어가며 스마트폰으로 계좌에 잔고 확인을 하는데 월급이 들어와 있는 걸 보곤 급 반색이 되어 세상을 다 가진양 리드미컬하게 걷다가 통신비 나가는 통장도 확인했는데 돈이 모자랐는지 1천 몇백원 탈탈 털려 인출되고는 잔고가 3원이다. 인간이라는 것이 참 간사해 방금전 월급들어온 잔고는 어느새 잊고 금방 잔고없는 통장에 맘이 무거워 진다. 


광화문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려 서 있는데 건너편에 군밤을 굽고있는 할머니가 보인다.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마침 낮에 점심먹을때 내가 카드로 계산하고 동료에게 받은 현금 2만원이 있다. 오랜만에 만나는 할머니, 군밤을 팔아드리려고 바로 직진해 가서 군밤 한 봉지 주세요 한다. 할머니가 5천원짜리 있고 3천원짜리 있다고 하신다. 3천원짜리 주세요 하고는 버스를 기다리며 밤을 몇 개 먹다가 5천원짜리 있다는 말이 맴돈다. 자주 오지 못해 팔아드리지도 못하는데 우리 와이파이(와이프) 갖다주자 생각하고 5천원짜 한 봉지를 더 산다. 


저렇게 성실히 군밤구워서 아들딸 잘 키우셨을게다. 생전 맛난거 아시는지 모르시는지 못드시면서 사셨을게다. 좋은거 있으면 자식새끼들 생각하며 군밤 한 봉지 두 봉지 팔아 키우셨을게다. 쓴 커피 척척 사먹으며 도시인 된 양, 미국것과 맛이 다르다며 투덜대면서도 척척 사먹으면서 우리네 할머니가 파는 군밤에는 인색했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. 


오늘, 아니 정확히 몇 시간 전 어제,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을 했다. 박근혜 대통령은 군밤 파는 할머니 같은 사람이 걱정없이 사는 사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. 고 박정희 전대통령을 은인으로 알고 사시는 어른신분들, 박근혜 대통령이 아비만큼 해주리라 철썩같이 믿고 뽑아준 여러 국민들, 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그런 대통령이 되어 주어야 한다. 부디 그렇게 5년 잘 해주시기를 바래본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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